2009. 7. 16. 00:43

요새 여성비뇨기과 오픈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가 갑자기 나를 정신차리게 만든 환자가 있었다.

보통 비뇨기과에서는 염증질환이 많기 때문에 항생제 처방하면서 왈.....
"약먹는 동안에는 술은 먹지 말고 하루 3번 (혹은 2번) 약을 잘 드셔야 합니다."

근데 1달전에 요도염으로 치료받다가 오지 않던 환자가 갑자기 와서 약처방을 원했다.
"아니 항생제는 꾸준히 잘 먹어야 내성이 안생기는데 왜 안오셨어요?"
"아~ ! 약을 먹다가 며칠뒤에 술을 먹어야 해서 약을 안먹었어요......"
"잉? 아니 술을 먹지 말고 약을 먹을 생각을 해야지, 술을 먹고 약을 먹지 않을 생각을 해요?"
"사회생활하면서 술을 어떻게 안먹습니까?"

쩝.....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나역시도 술을 좋아하고, 누가 불러주면 휙...하고 어디든지 달려가는 성격이고, 또한 나의 생활에서도 사회생활하면서 피치 못하게 술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중에 갑자기 환자가 묻는다.
"근데, 왜 약을 먹을때 술을 먹지 말라는 겁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새같이 비오는 날 간혹 우주회가 생각나곤 한다.
며칠전에도 비가 쏟아지는 날에 목고기와 함께 소주를 먹었는데.....
출처 : pengs.tistory.com/41)



일반적으로 약을 복용할때는 우리몸의 위나 장에서 흡수되어 혈관으로 들어간다. 혈관으로 들어간 약은 혈관을 따라 효과를 보고자 하는 장기까지 가서 거기서 효과를 보는 것이다.
이때 간이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 단순히 흡수된 약이 어떤 기관에 작용하기 위해 중간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약물을 걸러주어 체내의 약물농도를 낮추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간의 효소(enzyme)가 위의 작용을 한다.

술도 우리몸에서 약과 똑같이 반응한다.
똑같이 흡수되어 똑같이 간이 작용을 한다.
만일 술을 먹게 된다면, 약을 처리하기 위해 효소(enzyme)를 써야 하는데, 술을 처리하기 위한 작용으로 효소를 뺏기게 된다.

따라서 간의 효소가 약을 제거하는데 쓰인다면 술먹은 만큼 효소를 못쓰게 되므로 체내에 약물농도가 높아져서 그만큼 부작용의 위험이 커지게 된다. 반대로 간의 효소가 중간작용으로 약의 효과를 더 높히는데 쓰인다면 (이것을 전문용어로 bioavailability라고 부른다.) 술먹은 만큼 효소를 못쓰게 되므로 체내에서 약의 효과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요새는 멀티태스킹이 유행하고 있지만, 컴퓨터도 정확하게 보면 한번에 하나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한번에 하나씩 일을 처리해도 우리감각에서 보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몸은 컴퓨터가 아니다.


물론 사회생활이 중요하고, 우리나라가 그만큼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약을 포기하고 술을 먹기보다는 술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고 약을 먹는 것이 몸에 더 좋지 않을까.....
그런 환경이 좀 더 조성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Posted by 두빵